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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사회자본 '사람책도서관'

작성자
서울휴먼라이브러리
작성일
2015-09-03
조회수
1297


[세상읽기]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사회자본 '사람책도서관' /고영삼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50901.22030185149

   
나름대로 페이스북을 몇 년 동안 애용해왔으면서도 어제서야 빌 게이츠에게 친구 신청을 했다. 빌 게이츠? 맞다. 여러분이 아는 바로 그 빌 게이츠에게 친구 신청을 한 것이다. 신청한 뒤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친구 맺기를 수락한다는 쪽지가 왔다. 어라. 세상에! 페이스북이? 빌 게이츠가? 그가 청바지를 입거나 대중적인 모습을 더러 보일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응답을 할지는 몰랐다. 난 제법 득의양양해졌고, 호기롭게 그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뒤 그는 자신의 홍보 담당자를 나에게 연결해주었다.

나는 그동안 이곳저곳에서 강의할 때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가 우리 사회를 훨씬 더 개방적이고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고 늘 역설해왔다. 하지만 빌 게이츠와 하루 만에 쪽지를 주고받는 놀라운 경험을 하리라고는 정말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한 20년 전부터 그에게 매료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가 "내가 살던 작은 마을의 도서관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의 말을 생각하다 보면 입시 준비실이 되어버린 우리 동네 도서관과 가만히 책 읽을 시간을 허용치 않는 교육제도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그러다가 도서관을 중심으로 지역생활권을 완전히 개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도대체 문명을 바꾸는 큰 생각을 일으킨 빌 게이츠 동네의 작은 도서관은 어떤 곳일까?

그러다가 마침 최근 재미있는 도서관을 발견하여 여간 기쁘지 않다. 그것은 바로 '사람책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도서관이 아니지만 도서관이다. 도서관이 아니란 것은 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도서관이라고 한 것은 '책' 대신 '사람책'을 쌓아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책도서관이다. 그럼 사람책이란 무엇인가?

주위를 둘러보면 얼핏 평범하게 보여도 그 가슴속에 영화 몇 편, 소설 몇 편의 이야기를 함축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없는 길 헤쳐 가다가 어느덧 스스로 길이 된 사람도 있다. 존재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용기가 된 사람, 위안이 된 사람, 등불이 된 사람들이 있다. 또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 좋은 사람, 항상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박사나 교수 등 전문 지식인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머리는 맑아 세상 이치를 설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고 가슴은 영글어 마음을 의탁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들을 '사람책'이라고 부른다. 뭐 세상에 배울만한 것이 꼭 글로 씌어 있어야 하나, 암묵지로 되어 있을지라도 콘텐츠가 중요하지, 라는 관점이다. 그런 인생의 고수를 만나면 가슴이 뚫린다. 향기로운 삶에 무방비로 감명받는다.

애초 서구에서 사람책도서관은 동성애자, 노숙자 등을 둘러싼 편견을 없애자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편견 해소만을 목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 고민 많은 청소년, 기죽은 취업 준비생, 노후가 걱정인 중장년, 스마트폰 중독을 걱정하는 직장인을 위한 사람책도 가능하다. 지난해에는 국회도서관이 관련 콘퍼런스를 열었다고 한다. 국회도서관에서는 신체장애인 변호사, 이주민 대표, 철밥통 공무원, 심지어 아줌마, 사회복지사, 여대생, 채식주의자 등도 사람책으로 뽑았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휴먼라이브러리의 추효경 간사는 우리 사회에 전문가가 많다 해도 실제로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을 받을지 막막한 것이 현실인데, 사람책도서관이 바로 대안이라고 말한다.
흔히 사람들은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인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살아보니 정말 그렇다. 이 인복을 요즘 말로 바꾸면 '좋은 네트워크 시크릿'정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형편 좋은 사람들은 온·오프라인의 좋은 연줄망으로 인복을 만들어 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소외계층 사람들은 정말 생존의 절절함을 이겨내는 정보나 네트워크가 너무 취약하다. 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자기 분야 외는 모르고 지내다가 예고 없는 곤란에 부딪혀 쩔쩔 헤맨다. 이때 선의를 가지고 해결 방안을 훈수해주는 시스템인 사람책도서관은 우리 모두의 인복 파이를 키우는 시크릿이다. 공유경제의 논법으로 보면 일종의 공유지혜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이 사람책도서관을 통해 인생 선배들의 암묵지를 대면하여 듣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사회가치의 탄생 아닌가?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보르헤스는 "천국이 있다면 그곳이 도서관"이라고 했다. 선과 악의 모든 가능성을 보여주는 디지털 기술에 사람책도서관의 선한 의지가 함께해 새로운 신뢰문명의 싹을 키울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훈훈한 천국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수석연구원·사회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