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우리가 무심코 가지고 있는 '편견'을 다룬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책 이름 : 다가오는 말들 작가 : 은유 출판사 : 어크로스
출판을 하고 인터뷰 일부를 발췌하였습니다.
작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해 나눠 보기도 했는데 한번 보시죠!
다가오는 말들, 낭독의 시간
제 몸 써서 일한 사람들이 갖는 삶에 대한 통찰력, 남의 몫 가로채지 않고 자기 손 놀려 ‘저금통’ 같은 갯벌 일구어 살아온 이들의 가뿐함, 그 와중에도 기역 자로 굽은 허리를 펴 “누부리 곱과(노을이 고와)”라며 감탄할 줄 아는 우아함을 배운다. 이 책의 최고령 97세 소무의도 윤희분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농땡이가 최고야. 젊어서 일 많이 하지 마시오. 늙어서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안 했어. 젊었을 때는 뼈가 나긋나긋하니까 물불 안 가렸지. 농땡이가 최고야.”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작아진 몸피에서 나온 사리 같은 말, 인간다움을 추구하기에 너무도 혁명적인 그 말을 곱씨 ㅂ는다. - 『다가오는 말들』 104쪽 김현 : 이 부분을 낭독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은유 : 제 오랜 편견이기도 한데요. 한국 사회는 성별분업 구도이고,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가정을 돌보는 역할이 부담되어 있다는 걸 의심 없이 받아들였었어요. 그런데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며 여성들을 만나다 보니 여성노동자인 경우가 굉장히 많은 거예요. 근처 분식점만 가도 주방 이모님들이 전부 여성이고, 노동자잖아요. 또 어느 집에서건 아빠가 돈을 벌고 엄마는 100% 전업주부인 경우는 거의 드물었어요. 엄마도 경제적 책임을 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죠. 여기 나오는 ‘소무의도’에 사시는 할머니도 허리가 굽어지도록 평생 노동을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여성은 노동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을까 싶었어요. ‘노동’하면 보통 중년 남성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니까요. 분명 여성들도 노동을 많이 했고, 한국 사회를 떠받치는 중요한 노동력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내용이 담긴 글이었고요. 저는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몸 써서 갖는 삶에 대한 통찰을 굉장히 신뢰해요. 너무 믿고 좋아하죠. 그들의 말이 갖는 힘이 있거든요. 그 시간을 살아낸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 굉장히 큰 울림을 주는데, 여기서도 97세의 할머니께서 “농땡이가 최고야”라고 말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이 말을 들어야겠다, 싶었고요(웃음).
김현 : 저는 뒷부분에 이어진 말도 너무 좋았어요. “노을이 고와.” 그 노동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진짜 같은 말이었거든요. 작가님은 그럼 농땡이 필 때 주로 뭘 하세요?(웃음)
은유 : 보통 책을 읽는데, 그걸 제외한다고 하면 혼자 영화 보러 많이 가요. 영화를 보는 건 밀도가 있는 최고의 휴식인 것 같아요. 또 가사노동이 제게는 머리를 식히는 시간 중 하나죠. 설거지 한 번 하고 나면 복잡했던 머리가 싹 정리되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눈 뜨자마자 가사노동을 하면 절대 안 돼요(웃음). 그 쌩쌩한 기운으로는 글을 써야 하고요, 최소한의 기운만 남겨서 가사노동을 해야 하죠. 글쓰기 수업에 오시는 주부, 아이 엄마들께서 글 쓸 시간이 없다고 토로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 보고 집안일 하고 글을 쓰려면 결코 쓸 수가 없어요. 글을 먼저 쓰고 집안일을 나중에 해야 해요. 그래야 삶도 바뀌어요. 내 소중한 시간을 어떤 일로 쓰느냐가 인생을 결정하니까요.
김현 : 『다가오는 말들』 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와요. ‘누가 내게 ’좋은 책‘을 묻는다면 말문이 막히겠지만 ’좋아하는 책‘을 물어오면 기꺼이 말을 나누고 싶다.(328쪽)’ 그래서 묻습니다. 은유에게 좋은 책이란?(웃음)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은유 : 제게 좋은 책은 밑줄 그을 게 많은 책이에요. 좋아하는 책은, 최근에 읽은 것 중에는 『여자전쟁』 을 추천하고 싶어요. 세계 각국 여성이 겪는 핍박의 사례를 취재해서 정리한 책인데, 읽으면서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며 겪는 고통도 너무 크고 끔찍한 사건들이 많지만, 그 외에 다른 차원의 핍박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됐고요. 세계적으로 여성의 억압 역사가 너무 길어서, 이걸 바꾸는 건 어렵고 오래 걸리는 싸움일 수밖에 없겠다는 걸 알게 하는 책이었어요. 시야가 넓어졌고, 좀 더 결의를 다지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책은 역시 ‘니체’의 책인 것 같아요. 제게는 첫사랑 같은 책이에요. 잠언이고 아포리즘이기 때문에 읽을 때마다 새로운 영감을 주는 것 같아요. 공감이나 소통은 타인에게 물드는 일이므로 토익 점수 올리기 같은 속성반이 없다. 도달할 목표나 보장된 성과가 없는 그 무용해 보이는 시간을 흘려보내며 자신도 떠나보내고 타인이 되어가는 지루한 노동이다.
난 그에게 공감 훈련을 위해 자신과 대화해보기를 권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가장 먼 존재라고 니체가 일갈했다시피, 가장 먼 타인인 자기 삶부터 들여다보고 자신과 소통을 시도하는 거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고 느낄 때 ‘왜?’라고 질문하고, 좋음이란 무엇인지, 그것이 돈인지 관계인지 가치인지 정확하게 따지면서 글로 써보자고. (중략)
언젠가 누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서 가장 좋은 게 뭐냐고. 나는 이 얘기를 들려주었다.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된 점이라고. 저마다 고유한 사정과 한계, 불가피함을 안고 살아간다는 걸 알았다고. - 『다가오는 말들』 140쪽 김현 : 이 부분을 골라 오신 이유는요?
은유 : 『다가오는 말들』 은 제가 이렇게 편견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고백이자 성장의 기록이고, 그렇게 하지 못했던 날들에 대한 반성문이에요. 그런데 이 부분이 책의 전체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현 : 저도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면서 사실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거든요. 거리를 멀리 두고 보면 그동안 몰랐던 내가 보여요. 글 쓰는 사람이 되고서 가장 좋은 건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된 점이라는 말이 참 멋지네요.
은유 : 글쓰기는 자문자답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질문하고, 내가 대답하는 과정이 글로 기록되는 거거든요. 일상에서는 생각의 표면만 가지고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지만 글을 쓰려면 그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하죠. 나에 대해 무언가 쓰고 싶다면 ‘왜? 언제 그걸 경험했어?’ 라는 식으로 자기가 질문하고 자기가 답을 해보면 될 것 같아요.
김현 : 자기 안에 분노가 많아서 글을 못 쓰겠다고 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돼요. 특히 어떤 폭력을 겪은 분들이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글을 쓰면 욕밖에 안 나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글을 들고 글쓰기 수업에 가면 선생님들께서 항상 감정을 억눌러야지 이렇게 글을 쓰면 안 된다고 하신대요. 저는 사실 처음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던 게 ‘욕’이었거든요. 어린 시절 일기장에 딱 두 가지 내용밖에 없었어요. 욕 아니면 사랑(웃음). 솔직한 감정의 표출도 글쓰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은유 : 저도 ‘추상적인 표현은 너무 많이 쓰면 안 된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아라’ 같은 지키면 좋은 글쓰기 팁 같은 것들을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게 한 번에 되진 않는다는 게 중요하죠. 원 없이 해봐야 욕망만 갖고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자기 깨달음이 오니까요. 욕이든, 관념적인 글이든, 자기 연민이든 먼저 충분히 쓰다 보면,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스스로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본문중 일부 발췌-
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8866835&memberNo=1101&vType=VER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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