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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글] 희망제작소 - (3) 휴먼라이브러리를 통해 본 우리 사회의 편견

  • 18-03-30 09:37

모든 사회에는 편견이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지만 대부분의 편견은 차별과 갈등으로 이어져 사회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2000년 덴마크의 평범한 청년들이 <휴먼라이브러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2014년 현재 전 세계 약 70여 개국으로 확산된 글로벌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2014년 2월 15일(토), 18일(화) 양일 간 진행되는 <휴먼라이브러리 창립자 로니 에버겔 초청 강연 및 컨퍼런스>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습니다. 행사에 앞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편견에 대해 알아보고, 국내외 <휴먼라이브러리> 운영 현황과 시민교육으로의 가능성까지 살펴볼 예정입니다.

휴먼라이브러리 기획 기사

(3) 휴먼라이브러리를 통해 본 우리 사회의 편견

휴먼라이브러리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2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1) 주제와 공간이 다양하고 제한된 형식 없이 저예산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특징, 2)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 보장을 위해 편견을 줄이겠다는 신념, 3) 사람책과 독자가 대화라는 도구를 통해 만나는 방식 등을 아울러 우리는 휴먼라이브러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휴먼라이브러리를 개최하는 과정은 비슷할지라도, 누가 왜 개최하는지에 따라 행사의 목표와 다루는 편견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국회도서관, 수원시평생학습관, 희망제작소가 공동주관하는 <휴먼라이브러리 창립자 로니 에버겔 초청 강연 및 컨퍼런스>에서 열리는 휴먼라이브러리는 한국사회에서 현재 어떤 편견이 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주된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편견을 다루고 사람책을 비치할 것인지 주관단체가 미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온?오프라인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리고 우리에게 지금 문제가 되는 편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먼저 일반 시민들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2013년 하반기 3개월 동안 페이스북, 네이버 해피로그와 개개인의 편견을 묻는 주관식형 설문지를 통해 온라인 약 40명, 오프라인 약 240명 총 250~300명이 답해주셨고, 1인 당 다수의 응답도 있었기에 총 800여 개의 편견이 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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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질문지 응답자료

이번 편견조사는 일반적 사회조사방법론에 근거하기보다는, 최대한 사람들이 편하고 솔직하게 응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본격적 조사에 앞서 희망제작소 연구원들과 함께 진행해 본 워크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편견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온?오프라인 설문을 실시해보니, 응답자의 신분이 노출되는 페이스북보다 익명으로 기재되는 오프라인 설문형태에 사람들은 더 솔직하게 반응했습니다. 객관식 문항을 통해 경향을 파악할 수도 있었지만 가능한 사람들의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들어보기 위해 자유롭게 서술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번 편견조사의 한계

따라서 이번 조사는 성별과 연령 등 응답자의 분포가 일관적이지 않고 응답내용도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편견조사는 향후 한국인들의 편견을 본격적으로 조사하는 연구가 진행될 때 주요한 기초자료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신 받은 응답은 임의로 소재가 유사한 것끼리 묶어 주제별로 어떤 편견들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지를 아래와 같은 표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특정한 기준을 사전에 정해놓고 답변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재별로 포괄하는 범위는 다릅니다.

                                                                                              (총 799개 응답, 단위: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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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별 편견개수

항목 설명

– 직업: 소득을 얻는 활동이 아닌 ‘역할’ 등도 포함 (예) 아파트입주자대표

– 외모: 얼굴, 인상, 체형 및 연관된 행동 특성도 포함

– 지역: 특정 장소, 지역, 민족, 인종 등을 포함

– 가족: 결혼제도, 가정, ‘집’에 해당되는 사항들 포함 (예) 비혼주의자, 한부모가정

– 성별: 남성, 여성 및 고정된 성 역할

– 연령: 세대 담론 등도 포함 – 학력: 학교, 학과, 학벌, 성적 등

– 사상: 정치, 종교, 가치관, 신념 등 (예) 종북, 병역거부, 채식주의

– 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한정함 (예) 장애인, 이주민, 시설아동

– 기타: 위의 카테고리에 포함되지 않는 모든 것

직업에 대한 응답이 월등하게 높았고, 외모, 성별, 지역 등 일반적으로 언론 등에서 ‘이러한 편견이 있다.’라고 주로 언급되는 편견들이 그 다음으로 많은 빈도수를 차지했습니다. 한 주제로 묶기 어려운 기타 항목이 가장 높은 응답수를 차지했고, 기타 항목 중에는 혈액형에 관한 편견 22개, 돈? 물질에 관한 편견 21개 정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위와 같이 빈도수의 차이가 발생하는지는 이번 응답 분석을 통해 알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직업에 관한 편견이 가장 많이 작성된 이유는 다양한 측면에서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사농공상의 유교적 인습이 여전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어떤 직종과 직업에 대해 이런 편견을 가졌다고 말하기가 ‘나는 장애인은 무능력하다고 생각해’, ‘동성애자는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싶어’라고 말하는 것보다 심리적 부담감이 적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온라인상에서 응답하기까지의 참여경로나 오프라인 상에서 기재를 권유하였던 누군가의 설명의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습니다.

전 세계 공통적인 편견의 특징

다만 편견에 관한 응답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편견의 특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비교대상으로는『The Living library Organiser’s Guide 2011』의 ‘영어, 헝가리어 두 개 국어를 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 목록’을 참고했습니다.

① 직업군은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어도 편견이 생긴다.

직업에 관련한 편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크게 두 가지 발생 원인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주변에서 흔히 보기 어려워 대중매체 등에서 보여주는 판에 박은 듯한 시선이 편견이 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주변에서 흔히 보면서 겪거나 느끼는 부정적 감정이 편견이 되는 경우입니다. 전자와 같은 상황에서 편견의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직업군 중 하나는 ‘정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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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적으로 정치인을 접하게 되는 계기는 많지 않습니다. 사실 여부와 별개로 뉴스가 자주 보여주는, 드라마에 나오는 정치인 역할을 맡은 배역들의 성격과 행동이 사람들의 정치인에 대한 이미지와 편견을 형성합니다.

또 어떤 편견은 직업군의 특색 때문에 한 측면이 주로 강조되면서 생기기도 합니다. 아래는 ‘공무원’에 대한 국내외 편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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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에 대한 편견은 정해진 규격과 요건을 맞추어 규정대로 움직여야 하는 직종의 특색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공무원을 직업인으로 만나게 되는 경우는 주로 정부에게 무언가를 요청하거나 허락을 구해야 할 때이므로 생기게 되는 편견이 아닌가 합니다.

② 어느 나라나 인근 국가 국민을 대상으로 한 편견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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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소개한 가이드에는 루마니아인, 슬로바키아인, 헝가리인 등에 대한 편견이 다수 기재되었지만, 이번 편견 조사에서 위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편견은 전무했습니다. 대신 중국인, 일본인, 동남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편견이 주로 언급되었습니다. 앞의 사례를 통해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의 국민들이 교류할 기회가 잦은 만큼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높아 편견을 갖게 되기 쉽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중 한국의 특색이 있다면 바로 북한이탈주민에 관한 것입니다.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이번 조사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을 향한 편견이 여러 번 언급되었습니다.

한국에서만 드러나는 몇 가지 편견들

앞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편견을 두 가지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편견 외에 다른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특성을 담은 편견도 분명 있었습니다. 몇 가지 화제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혈액형

A형은 소심하다, B형 남자는 바람을 피운다, O형은 성격이 좋고 뒤끝이 없을 것이다…….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단정 짓는 현상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이런 구분이 편견에 불과하다는 실상 역시 어느 정도 사회에 통용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견조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혈액형에 관한 편견을 적었습니다.

② 나이

연령과 관련한 편견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됩니다. ‘나이든 사람은 보수적이다.’, ‘나이든 사람은 행동이 굼뜨고 고지식하다.’와 같은 고정된 편견도 있지만, 20대, 아줌마, 아저씨, 늙은이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이와 연관된 편견들이 표현됩니다. ‘김 여사는 운전을 못한다.’, ‘배 나온 중년남자는 변태일 것이다.’와 같은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③ 성 역할

성 역할을 다루는 편견 역시 사회의 다양한 주제들과 만나면서 확대 재생산됩니다. ‘여성은 논리성이 떨어진다.’나 ‘남성은 성욕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유흥주점에 가는 것은 당연하다.’처럼 객관적 근거가 부족한 편견도 있지만, ‘백인과 사귀는 여성은 김치년이다.’ ‘결혼할 때 남자는 집을 장만하고 여자는 혼수를 마련해야 한다.’와 같은 한국의 특수한 사회적 배경과 결합해 발생하는 편견들도 있었습니다.

④ 학력

‘서울대생들은 머리는 좋지만 사회성이 떨어진다.’나 ‘연고대 출신들은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등은 대학 서열에 따라 기회가 불균등한 사회 현실을 반영한 편견이 두드러졌습니다. 이는 ‘고졸 혹은 대학 중퇴자는 업무능력이 부족하다.’거나 ‘대안학교 학생이나 홈스쿨러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다.’처럼 보통의 학교체제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편견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⑤ 소수자

이주민, 동성애자, 장애인 등 우리가 흔히 ‘편견’하면 떠오르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편견을 기재하라고 할 때, 사람들은 이들을 그다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도출된 편견 799개 중 소수자와 관련한 응답은 42개로 5%에 불과했습니다. 종교를 주제로 한 편견 중 신도가 소수인 종교와 종교인에 대한 편견보다 기독교인처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더 많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습니다.

제한된 사람들의 주관식 설문을 통해 한국 사회의 편견을 전반적으로 분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응답을 분석하면서 우리가 휴먼라이브러리를 준비하고 운영하면서 느끼고 관찰한 내용들을 공유하는 것이 한국인들이 편견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먼라이브러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과 태도는 우리에게 다양한 고민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고민의 과정을 공개하고 흐름을 함께 짚어보는 것이 지금 여기서 우리가 논의해야 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하는데 보탬이 될 듯합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곧 편견

지난 1편에서 선입견, 고정관념, 편견의 개념과 특징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각각의 학술적인 정의는 무척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전적 정의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고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쓰임과 자신만의 해설을 덧붙이게 됩니다. 편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여러 사람들에게 편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편견을 인식하고 있는지 한 걸음 떨어져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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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 설문카드를 전시한 벽

한국인에게 편견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

온오프라인을 통해 “당신의 편견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어떤 내용이 담겼든 바로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도대체 뭘 어떻게 써야 할까 궁리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우리가 왜 이 질문을 던지게 되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 편견을 언급했는지 한참을 설명한 뒤에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을 여러 번 지켜보면서 편견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평소에 편견을 의식적으로 생각하거나 고민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편견이라는 단어가 주인공이 되는 낯선 상황에 놓이게 되면, 우선 당황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편견이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이를 객관화하는 것을 어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편견을 적어주세요.”라고 요청했을 때 시험시간에나 보듯 한 손으로 머리를 쥐어짜고 다른 한 손으로는 펜을 들며 눈은 용지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공통적인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기재하는 편견은 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사회의 시선이었다는 점입니다. “당신이 갖고 있는 부적합한 견해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사람들은 “당신이 겪고 있거나 겪어본 적 있는 불편하고 불쾌했던 사회 속 부정적 통념은 무엇입니까?”로 해석하여 응답했습니다. 일례로 비영리활동가에 대한 편견은 1백여 개의 직업에 대한 편견 중 20%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는데, 이중 절반은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한 시범 워크숍에서 나온 의견이었습니다. 자신이 비영리활동가로 살면서 들었던 오해를 여러 편견 중 가장 많이 손꼽았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편견 자체를 크게 고민하지 않으며, 어떤 부정적 견해로 인해 나 또는 나와 가까운 사람이 피해를 본다고 인식할 때 편견이 문제가 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편견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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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에 대한 입장을 적은 설문카드

물론 나를 힘들게 하는 시선만 편견으로 이야기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주변에서 생기는 여러 사회갈등에 관심을 갖고 그 중 몇몇은 편견이며 이 편견이 차별로 이어진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받아본 편견 메시지 중 재미있는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이 편견은 내 편견이 아니다.”라고 기재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명히 사회 속 편견은 편견인데, 나는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당신의 편견이 무엇이냐 물었는데 자신의 편견은 아니니 그렇게 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숨겨진 함의가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 가장 주요한 것은 사람들은 편견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알면서도 일정 부분 자신도 그 편견에 동조하게 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려는 폐쇄적 태도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편견을 누구나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편견의 주체는 내가 아닌 불특정 다수라고 여깁니다. 이는 사회학자 데이비슨(W. Phillips Davison)이 주창한 ‘제3자 효과(The Third-Person Effect)’와도 연관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3자효과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메시지가 자신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타인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여기는 개인의 지각’을 말합니다. 그래서 제3자효과는 다른 사람보다 자신의 판단력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경향을 설명하는데 주로 쓰입니다. 제3자효과가 편견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설명하는데도 충분히 사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편견 자체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사람들은 편견을 이야기하고 드러내는 것 자체를 꺼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앞에서 말했듯 사람들은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자신이 편견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그 편견의 대상이거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편견을 피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피하는 것입니다. 사람책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특히 공을 들인 사람책은 북한이탈주민이었습니다. 한국만이 갖는 편견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람책이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했습니다. 여러 관련단체에 요청했고 지인까지 동원했지만 사람책 섭외가 어려웠습니다. 추천받은 사람책이 갑자기 퇴짜를 놓기 일쑤였고, 하겠다 안 하겠다 말 바꾸기도 여러 번이었으며, 잠적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이 거절의사를 표하면서 한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경험적으로 내가 북한이탈주민인 걸 알리지 않는 편이 항상 자신에게 제일 나은 선택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체장애인처럼 눈에 보이는 편견은 오히려 감출 수가 없어서 편견이 더 심해지기도 하지만 편견을 없애려는 시도와 동기에도 힘이 붙습니다. 대조적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역시 사람책 섭외가 어려워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복지사를 바라보는 주변의 인식이나 편견이 사회복지사의 처우를 더 열악하게 성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너희는 봉사하는 거니까, 사회복지사가 왜 임금투쟁을 하고, 왜 처우개선 얘기에 목숨 거냐. 너네는 더 어려운 사람 도와야지 이런 얘기들이 있어서. 사회복지사들이 그래서 사회복지사는 천사다 이런 얘기 들으면 경기 일으키거든요. 우리를 직업군으로 봐줘야 하는데, 나눔과 어떤 그런 정신이 충만한 사람들로 보는 경향이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그 얘기를 제일 많이 하더라고요.

우리 돈 받고 하는 일이고, 직업인데, 그냥 봉사정신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전문성 없이 할 수 있는 그런 영역으로 봐주면 되게, 수고한다고 하면서 봉사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전문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마음을 칭찬하는.

– 사회복지사 사람책 사전인터뷰 중에서


다른 하나는 당사자가 아닌 대변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책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왜 내가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내가 그 편견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의 근거가 어디에서 나왔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책은 사람책이 되기로 승낙하고서도 자신이 겪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기보다 ‘남들은’ ‘누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신경 썼습니다. 편견이 부당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수치나 간접 경험들을 보여주는 능력은 사람책이 가지면 좋을 중요한 역량이지만, 내 얘기보다 소속집단의 목소리를 내는데 신경을 쓰다보면 자서전을 써야 하는데 르포를 쓰는 우를 범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 점은 나의 이야기를 하는데 익숙하지 않고 사생활을 드러내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한국 문화의 특징과도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담감을 떨치기 위해 자신은 매개자의 역할만 맡고 발언 자체는 공동의 것으로 한다든가 권위 있는 사람의 발언을 무의식적으로 빌려오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편견을 마주하려는 용기를 내는 순간

그렇다고 만일 사람들이 타인을 향한 또는 타인이 겪고 있는 편견에 무관심한 채 자신의 편견만 호소했더라면 휴먼라이브러리는 성사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오는 2월 15일 진행하는 휴먼라이브러리는 사전대출을 시작한지 열흘도 되지 않아 모든 사람책이 마감될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왜 편견이란 익숙지 않은 단어로 포장한 휴먼라이브러리에 귀한 시간을 내 찾아오는 것일까요?

편견 대상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을 때

○ 우리 사회에 사는 이주민의 시각을 알고 싶다.

○ 이주민과 직접 이야기해본 적 없습니다. 일부러 이야기를 피한 건 아닌데, 부담스러운 틀이 없이 말을 듣고 건넬만한 기회가 없었어요.

○ 디아스포라 연구라는 강의를 수강하면서 편집된 이주민의 이야기가 아닌, 날것 그대로의 이주민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 이주민은 왜 자기 힘으로 성공하지 못 하는 건가요? 이주민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한국인은 어떤가요?

– 이주민 사람책 대출신청사유 중

첫 번째로 대상에 대한 호기심과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를 들 수 있습니다. 어떤 대상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때 사람들은 사실 여부를 어떤 방식으로든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 합니다. 주변에 다수 있지만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 우연히 그 편견을 접할 기회가 생기게 될 때 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또한 짧은 경험이나 매체를 통해 무비판적으로 성급하게 수용한 의견을 정정하겠다는 의지가 생겼을 때 자신의 편견을 직면하려는 용기가 생기기도 합니다.

나와 편견 대상과의 공통점을 발견했을 때

○ 저는 새내기 아줌마입니다. 함께 사는 아줌마들을 이해하고 싶고 용기 받고 싶습니다.

○ 나도 아줌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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